한국의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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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니세컨드 조회 0회 작성일 2020-11-21 19:35: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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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나라와 인간의 길 / YTN 사이언스

수백년 동안 우리의 삶과 정신을 이끌어온 유교.

과연 그 길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새 나라 건국에 반드시 필요했던, 새로운 사상.

조선은 왕도 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체계가 필요했다.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문물들이 쏟아져 들어오며, 세상은 날로 변해갔다.

그러나 유교 사상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도 그 가치를 잊지 않았다.

삶을 이끄는 도덕으로서, 삶을 바꾸는 신앙으로서, 오랜 시간 우리의 생각과 생활 속에 자리잡은 신념.

그리고 그것을 계승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YTN 사이언스 기사원문] http://www.ytnscience.co.kr/program/program_view.php?s_mcd=0033\u0026s_hcd=\u0026key=201503120914544079

유교 문화의 산실, 안동 / YTN 사이언스

주자와 공자의 정신이 뿌리깊이 남아있어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 불리는 고장, 현재까지도 유교문화와 선비 문화를 가장 잘 지켜오고 있는 도시, 안동.

두 산맥이 갈라지는 사이 분지에 형성된 안동에는 영남의 4대 길지 중 3곳이 위치한, 풍수 지리적으로도 이상적인 도시였다.

안동의 세 길지는 바로 도산마을, 내앞마을, 하회마을. 이 세 마을에서는 각각 퇴계 이황,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등 조선 후기의 학풍을 이끌었던 대학자를 배출했다.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린 학자는 퇴계 이황이다. 43세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도산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알려진 제자만 해도 309명으로 이들은 퇴계학풍을 존승하며 퇴계학파, 나아가 영남학파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제자가 바로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이다. 학봉 김성일은 강직한 성격으로 불의, 부정에 대해 직언을 서슴지 않아 조정의 호랑이인 전산호라고 불렸다. 서애 류성룡은 문신이자 병법전략가로서 조선조 이래 최대의 위기였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생전에 이들은 학문에 있어서 경쟁자였으며 조정에서는 조언자였다. 그들의 후손들은 각각 선조의 유훈을 이어받아 약 500년 동안 가풍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안동은 뿌리 깊은 역사와 사회적 덕망을 지닌 종가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종가에서는 유교 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불천위 제사와 봉제사 접빈객의 정신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안동의 유교 문화 계승 노력은 현재 각계각층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선조들의 문집 목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학계에서는 안동학이라는 지역학을 통해 안동의 정체성을 학문으로 정립했다.

시간은 흘렀어도 정신은 그대로 보존한 도시. 안동에는 현재도 선조들의 예(禮)와 학(學)이 살아 숨 쉬고 있다.

[YTN 사이언스 기사원문] http://www.ytnscience.co.kr/program/program_view.php?s_mcd=0033\u0026s_hcd=\u0026key=201510230928468430

한국의 유교사회 아들을 갖기위한 과거 어머니들의 노력

오랜 세월동안 이어온 한국인의 삶 노동력이 중요했던 그때에는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들을 낳아야 대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조상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하는데...! 한국의 유교사회를 엿볼 수 있는 희귀 영상 문화영화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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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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